영국 초등학교 Sports Day에서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과 응원하는 학부모들


영국 학교에 아이를 보내다 보면 날씨가 따뜻해지는 여름 학기에 Sports Day 안내를 받게 됩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운동회’를 떠올렸습니다. 운동회 날이면 아침부터 도시락을 준비하고, 가족들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아이들을 응원하고, 달리기와 계주를 꽤 진지하게 지켜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국의 Sports Day도 아이들이 달리고 경쟁하는 운동회입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하고 주변에서 들었던 영국 학교의 Sports Day는 한국의 운동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절반은 운동 경기이고, 절반은 학교와 가족이 함께 즐기는 동네 축제 같은 날에 가까웠습니다.


영국 학교의 Sports Day는 언제 열릴까?

영국 학교의 Sports Day는 보통 날씨가 비교적 좋은 여름 학기에 열립니다. 하지만 학교마다 날짜와 운영 방식은 다릅니다.

학교 전체가 하루 동안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고, 학년별로 오전과 오후 시간을 나누기도 합니다. 부모가 와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학교도 있고, 가족이 함께 점심을 먹는 시간을 마련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영국 날씨는 여름에도 변덕스럽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거나 운동장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일정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Sports Day를 앞두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경험보다 자녀의 학교에서 보내는 안내문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Sports Day에서는 무엇을 할까?

학교마다 프로그램은 다르지만 달리기와 relay race 같은 익숙한 종목뿐 아니라 아이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이 함께 진행되기도 합니다.

Egg-and-spoon race, sack race, obstacle race처럼 운동 경기라기보다 놀이처럼 보이는 종목도 있습니다. 학교에 따라 long jump나 throwing activities 등을 포함하기도 하고, House별로 점수를 모아 마지막에 우승 House를 발표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영국 Sports Day에 경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열심히 뛰고 자기 팀을 응원합니다. 이기면 좋아하고 지면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다만 제가 느꼈던 것은 반드시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것보다는 많은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조금 낯설었습니다.


경기가 끝났는데도 계속 달리던 아이

저는 일을 하느라 아이들의 Sports Day에 거의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아이 아빠가 대신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다른 학부모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아들이 아마 Year 2 정도였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아주 마르고 작은 아이였습니다. 게다가 평소에는 그 아이가 달리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이 달리기를 좋아한다거나 오래 달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래달리기 경기가 시작되자 아이가 계속 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났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습니다.

결국 선생님이 이제 그만 달려도 된다고 아이를 말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고 합니다.

저도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이 아이가 이렇게 달리는 것을 좋아했나?’

부모는 자기 아이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집이나 교실에서 보는 모습이 그 아이의 전부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Sports Day처럼 평범해 보이는 학교 행사에서 부모가 미처 몰랐던 아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Sports Day는 누가 가장 빨리 달리는지를 확인하는 날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자신도 몰랐던 무언가를 해보고, 어른들도 그 모습을 발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부모들도 은근히 진심이 되는 날

Sports Day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직장 동료들과도 종종 부모 경기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모든 학교에서 부모가 경기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모 달리기나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기를 마련하는 학교들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모두 아이들을 위한 행사라고 이야기합니다.

“It's just for fun.”

그런데 막상 부모 경기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티는 내지 않지만 아이가 보고 있으니 잘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자기 아이를 위해 한번 이겨주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문제는 마음과 몸이 항상 함께 움직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이미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오랜만에 전력으로 달려보는 몸은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승은 안타깝게 놓칠지 몰라도 부모들이 진지하게 달리는 모습에 아이들은 더 크게 웃고 응원합니다.

그것 역시 Sports Day의 재미 중 하나입니다.

잘하는 사람만 운동장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학생도 부모도 함께 뛰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인 것입니다.


운동장 한쪽에서는 작은 장터가 열리기도 합니다

영국 학교 Sports Day와 함께 열린 학교 기금 마련 fundraising 행사
Sports Day와 함께 작은 fundraising 행사가 열리기도 합니다.


학교에 따라 Sports Day와 함께 작은 table sale이나 fundraising 행사가 열리기도 합니다.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재미있게 느꼈던 영국 학교 문화 중 하나였습니다. Sports Day 같은 학교 행사가 있을 때 작은 판매대를 마련하거나, 학교 기금을 모으기 위한 바자회 같은 행사를 함께 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경기를 보러 온 부모들이 잠시 들러 구경하고, 무언가를 사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다른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래서 Sports Day가 단순히 운동 경기만 하는 날이라기보다 작은 동네잔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뛰고 있고, 한쪽에서는 부모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학교를 위한 fundraising도 함께 이루어집니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도 제게는 꽤 새로운 학교 문화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라는 곳이 아이들이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 부모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작은 공동체라는 것을 이런 행사에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Sports Day에 처음 참석한다면 아이의 경기만 보고 바로 돌아오기보다는 주변도 한번 둘러보세요.

생각보다 소박하고 재미있는 영국 학교생활의 한 장면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운동회와 조금 다른 점

제가 기억하는 한국의 운동회는 상당히 큰 행사였습니다.

가족들이 도시락을 준비해 학교에 오고, 반이나 팀을 응원하고, 달리기나 계주 같은 경기에는 제법 긴장감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한국의 학교 운동회도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모든 학교 Sports Day를 하나의 모습으로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제가 느낀 차이는 있습니다.

영국의 Sports Day는 분명 운동 경기인데 동시에 놀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조금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운동을 하는데 왜 조금 더 제대로 경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운동을 좋아하고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자라면서 학교 스포츠팀이나 지역 클럽 등에서 더 많이 운동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찾습니다.

반면 모든 아이가 똑같이 운동을 잘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자라던 시절에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여러 활동도 두루 잘하는 아이가 좋은 학생이라는 생각이 조금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다릅니다.

어떤 아이는 빨리 달리고, 어떤 아이는 공을 잘 다루고, 어떤 아이는 음악을 좋아하고, 또 어떤 아이는 책을 읽거나 조용히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누가 더 낫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쩌면 이것 역시 아이와 교육을 바라보는 문화의 차이 중 하나일 것입니다.


처음 Sports Day에 참석한다면 무엇을 준비할까?

처음 참석하는 부모라면 우선 학교에서 보내온 이메일이나 안내문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학교에 따라 준비해야 하는 것이 다르지만 아이의 PE kit와 trainers, 물병, 모자, sun cream 등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한여름이라고 해도 날씨를 믿을 수 없습니다.

아침에는 햇빛이 강했는데 오후에는 갑자기 흐려질 수도 있고, 비가 내릴 수도 있습니다. 학교 안내에 따라 가벼운 waterproof jacket 같은 것을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부모가 운동장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한다면 편안한 옷과 신발이 좋습니다. 가족 picnic 시간이 있는지, 음식을 직접 가져가야 하는지, 돗자리나 의자를 가져갈 수 있는지도 미리 확인하면 좋습니다.

또 학교마다 사진과 동영상 촬영에 관한 규정이 다를 수 있으므로 이것도 학교 안내를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부모 경기가 있다는 안내가 있다면 한 가지를 더 권하고 싶습니다.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가세요.

처음에는 “나는 안 뛸 거야”라고 생각해도 아이가 쳐다보면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르니까요.


이기는 것보다 오래 기억되는 것

Sports Day가 끝난 날 아이들은 누가 1등을 했는지, 어느 House가 이겼는지 신나게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의외로 그런 결과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에게 남아 있는 것도 아들이 그날 몇 등을 했는지가 아닙니다.

평소에는 달리는 모습조차 거의 보지 못했던 작고 마른 아이가 운동장을 계속 달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경기가 끝난 줄도 모르고 계속 달려서 선생님이 그만 달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어쩌면 Sports Day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아이가 운동을 잘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한번 뛰어보고, 친구를 응원하고, 함께 웃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는 것.

그리고 부모에게는 평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자기 아이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

영국 학교의 Sports Day에 처음 참석한다면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학교에서 보내온 안내를 잘 확인하고, 영국 날씨에 맞게 준비하고, 아이가 뛰는 모습을 응원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그날만큼은 아이가 얼마나 잘하는가보다 무엇을 즐거워하는가를 한번 바라보면 어떨까요.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의 모습을 운동장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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