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Harvest Festival|학교에서 식품을 보내달라는 이유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 내게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 음식을 학교에 가지고 가야 해.”
왜 음식을 가지고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 아이는 ‘donation’을 하는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린아이가 설명하는 말을 내가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왜 음식을 가져오라고 하는지도 잘 몰랐고요.
그냥 그렇게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학교로 가는 길에 평소와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통조림이며 여러 가지 식료품을 손에 들고 학교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아, 정말 오늘 학교에 음식을 가져가는 날이었구나.’
빈손으로 학교에 가는 아이를 보니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곧바로 슈퍼마켓에 들러 식품을 사서 다시 학교에 가져다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영국 학교에서 가을이면 만날 수 있는 Harvest Festival과 관련된 행사라는 것도, 아이들이 가져온 식품이 지역사회의 누군가에게 전달된다는 것도 잘 몰랐습니다.
영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다 보면 이렇게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던 작은 일들이 하나씩 영국 생활의 모습으로 이해될 때가 있습니다.
Harvest Festival도 내게는 그렇게 알게 된 영국의 문화 중 하나였습니다.
영국의 Harvest Festival은 무엇일까?
Harvest Festival은 수확에 감사하는 영국의 오랜 가을 전통입니다.
오늘날에는 학교나 교회 등에서 Harvest 행사를 열면서 감사의 의미를 지역사회와 나누기도 합니다. 학교에 따라 지역 Food Bank나 교회, 자선단체 등에 전달할 식품을 모으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학교에서 부모들에게 통조림이나 시리얼, 파스타, 쌀처럼 보관하기 쉬운 식품을 보내달라는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학교마다 기부하는 곳과 필요한 물품이 다르기 때문에 학교에서 보내온 안내문이나 기부 목록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교에서 모은 음식은 어디로 갈까?
학교에서 모은 식품이 모두 같은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학교는 지역 Food Bank에 전달하고, 어떤 곳은 교회나 지역 자선단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기관에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중 영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이 Food Bank(푸드뱅크)입니다.
Food Bank에서는 통조림, 시리얼, 파스타, 쌀, 차와 커피, 비스킷, 그리고 상온에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long-life milk(멸균우유)처럼 비교적 보관이 쉬운 식품을 많이 기부받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아이들을 위한 과자나 초콜릿 같은 간식류를 기부 품목으로 요청하는 곳도 있습니다. 평소 필요한 기본 식품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의 작은 즐거움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다만 지역과 시기에 따라 필요한 물품이 달라지므로, 기부하기 전 학교에서 보내온 안내문이나 해당 Food Bank의 기부 목록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실직이나 갑작스러운 소득 감소, 생활비 부담 등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상황으로 누구나 어려운 시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Food Bank에서는 통조림, 시리얼, 티, 커피, long-life milk, 파스타나 조리용 소스 등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식품을 많이 기부받습니다. 하지만 지역마다 그때그때 필요한 물품이 다르기 때문에 기부하기 전에 해당 Food Bank의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슈퍼마켓 한쪽에 놓인 커다란 트롤리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곳 한쪽에 커다란 트롤리나 박스가 놓여 있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장을 보고 나오면서 그곳에 통조림 하나, 파스타 한 봉지, 시리얼 한 상자씩을 넣고 지나갔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영국에서 살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식품들이 Food Bank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을요.
누군가에게는 장을 보면서 하나 더 집어 든 통조림 하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것들이 하나둘 모이면 누군가에게 필요한 식품이 됩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평범하게 흘러가던 일상이 갑자기 흔들리기도 하고,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의 고비를 지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가 조용히 내미는 손은 세상을 무척 따뜻하게 만듭니다.
특별히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받았던 도움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 역시 살아오면서 혼자 힘으로는 넘기 어려웠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내 힘만으로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었던 순간마다 누군가 내밀어 준 손이 있었고,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이제 다시 만날 수도, 고맙다는 말을 전할 수도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도움을 그 사람에게 다시 돌려줄 수 없다면, 언젠가 도움이 필요한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며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어쩌면 나눔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나 주었는지를 기억하고 되갚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았던 따뜻함을 기억했다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기억하게 될 작은 나눔
그래서 아이와 함께하는 작은 나눔은 내게 조금 더 특별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서로 나누며 살아야 하고,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도 가르칩니다.
하지만 어쩌면 아이들은 그런 말을 듣는 것보다 부모와 함께 작은 일을 직접 해보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지도 모릅니다.
장을 보면서 통조림 하나를 더 사고 Food Bank를 위한 상자에 넣는 일.
Harvest Festival이 되면 아이의 손에 작은 식품 하나를 들려 학교에 보내는 일.
아주 작은 일이지만 아이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고, 또 내가 누군가를 일으켜 주기도 하면서 서로 다독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이제 내게 Harvest Festival은 단순히 영국 학교에서 만나는 가을 행사가 아닙니다.
아이의 손에 들려 보내는 작은 통조림 하나에도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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