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성작가 문학여행 시리즈 #9 비아트릭스 포터 –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자연과 동화

영국 여성 작가 문학여행 시리즈 마지막 시간입니다. 내 조카가 아주 좋아 했던 피터 래빗의 고향으로 가보겠습니다.
영국의 북서쪽, 비가 잦고 안개가 낮게 내려앉는 Lake District 에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마을들이 있습니다.
돌담 너머로 양들이 지나가고, 작은 티룸 창가에는 따뜻한 홍차 냄새가 퍼집니다. 그리고 이 풍경 속에는 지금도 한 작가의 흔적이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바로 『The Tale of Peter Rabbit』를 쓴 Beatrix Potter 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귀여운 토끼 그림을 그린 동화작가” 정도로 기억하지만, 실제 그녀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강인했습니다.
출판사들에게 거절당했던 여성 작가였고, 당시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삶을 스스로 개척했던 사람이었으며, 평생 동안 영국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바친 환경보호 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외로움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바꾸어 낸 사람이었습니다.
외로운 어린 시절과 그림 속 세계
비아트릭스 포터는 1866년 런던 켄싱턴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당시 빅토리아 시대 상류층 여성들의 삶은 생각보다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또래 친구들과 자유롭게 뛰어놀기보다 집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어린 시절은 꽤 외로웠다고 전해집니다. 그 대신 그녀는 동물과 식물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토끼, 고슴도치, 생쥐, 오리 같은 작은 동물들을 세밀하게 스케치했고, 버섯과 식물까지 과학자처럼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균류 연구와 자연 관찰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계에서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시대 여성들에게는 “전문가”가 되는 길이 매우 좁았기 때문입니다.
피터 래빗은 친구의 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피터 래빗은 처음부터 거대한 출판 프로젝트가 아니었습니다. 비아트릭스 포터는 병든 친구의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작은 편지를 쓰게 되었고, 그 안에 장난꾸러기 토끼 한 마리를 등장시켰습니다.
그 토끼가 바로 피터 래빗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출판사는 그녀의 책을 거절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녀의 작은 사이즈 그림책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돈으로 직접 책을 인쇄했고, 놀랍게도 책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 수익으로 그녀는 평생 사랑했던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작은 농가 하나를 사게 됩니다.
그곳이 바로 Hill Top 입니다.
실제로 가 보면 왜 모두가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곳, 힐 탑
힐 탑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닙니다. 마치 작가가 잠시 산책하러 나간 집처럼 보존되어 있습니다.
17세기 농가 특유의 낮은 천장, 오래된 나무 바닥, 작은 창문, 좁은 계단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실제 영국 시골집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의 동화 속 장면들이 실제 집 안 곳곳에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 『톰 키튼』에 등장하는 정원
- 『제미마 퍼들덕』의 배경이 된 마당
- 『두 마리 나쁜 생쥐 이야기』에 영감을 준 인형의 집
같은 장소들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 보면 “동화가 상상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풍경을 거의 그대로 이야기 속에 담아낸 작가였기 때문입니다.
여행 팁
– 사람들이 실제로 가장 좋아하는 레이크 디스트릭트 코스
1. 윈더미어(Windermere)에서 출발하기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Lake Windermere 주변에서 여행을 시작합니다.
런던에서 기차로는 보통 Oxenholme까지 이동 후 환승해 Windermere 역으로 들어갑니다.
자동차 없이도 버스와 보트를 이용해 주요 지역 이동이 가능합니다.
특히 비 오는 날의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오히려 흐린 날씨가 이 지역 특유의 분위기를 더 깊게 만들어 줍니다.
2. Near Sawrey 마을 산책
힐 탑이 있는 Near Sawrey는 굉장히 작은 마을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조용함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돌담길과 작은 농가들, 양들이 지나가는 길을 걷다 보면 “영국 countryside”라는 단어가 왜 특별한지 이해하게 됩니다. 특히 가을과 초여름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3. 티룸에서 크림티 한 잔의 여유
레이크 디스트릭트 여행에서 사람들이 가장 만족하는 것 중 하나는 작은 티룸 문화입니다.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 스콘
- 클로티드 크림
- 잼
- 얼그레이 티
를 먹으며 천천히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굉장히 평화롭습니다. 빠르게 소비하는 여행보다 “머무르는 여행”에 가까운 곳입니다.
비아트릭스 포터는 왜 영국인들에게 특별할까
그녀는 단지 동화를 쓴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비아트릭스 포터는 책으로 번 돈으로 농장과 땅을 구입했고,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녀는 토종 양인 Herdwick sheep 보호에도 적극적이었고, 지역 농업 공동체와 함께 살아갔습니다.
1943년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무려 4,000에이커 이상의 땅과 여러 농장을 National Trust 에 남겼습니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보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아름다운 풍경 상당수가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즉, 그녀는 이야기를 남긴 것뿐 아니라 풍경 자체를 지켜낸 사람이었습니다.
왜 지금도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에 위로를 받을까
비아트릭스 포터의 이야기에는 거대한 사건이 없습니다. 대신 작은 정원, 따뜻한 부엌, 비 오는 창문, 작은 동물들의 움직임 같은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평범한 평온함을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책을 읽거나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걷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마치 누군가 이렇게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삶은 아주 크고 특별한 순간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비 오는 오후의 작은 풍경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나의 노트
비아트릭스의 토끼
남아 있는 아픔이 너무 커
떠나는 사람이 더 자유로운 줄 알았다.
그러나 마지막 빛으로
잎을 물들이는 가을 나무들처럼,
떠난다는 것은
조용히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라는 걸
너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라진 골목들과
비 오던 저녁의 냄새,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을 뒤로한 채
나는 떠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남겨지고 있다.
인생은 앞으로 걸어가는 일이 아니라
지나온 것들로부터
천천히 멀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댓글
댓글 쓰기